업인 듯 하다. 낙서

"도면 검토는 끝냈어?"
"네. 그야 물론이죠. 도장 다 찍었습니다."
"아니. 제대로 다 읽은 거 맞냐고."
"그럼요. 다 읽었다니까요?"
구부정한 자세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직장동료. 읽기는, 틀림없이 도장을 찍으면서 종이 한번씩 넘긴 게 다일 것이다.
"그래. 너무 티나게 놀지 말아라."
내 자리에 앉는다. 좌우로 높게 올라간 가림막 덕에 꽤 안락하다. 꼴에 설계팀이라고 구성된 환경이지만 솔직히 이제는 의미가 없다.
오늘 메일로 받은 도면을 열어본다. 이것도 예전에는 손수 usb로 가져왔었는데, 이제는 양자암호니 뭐니 전용망으로 날아온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도 상대 기업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으니 문제야 없지.
도면에는 동그란 알루미늄 바디에 작은 홈이 구불구불 잔뜩 있다. 처음 봤을 때처럼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컴퓨터 화면의 한 면에는 도면 첫 장을 다른 면에는 도면 맨 뒷장의 해설면을 띄운다. 해설에는 빼곡이 홈의 형태, 공차의 크기와 그 이유, 머시닝센터로 알루미늄을 파낼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며 후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혀있다. 심지어 공정을 모두 끝낸 후 어떻게 세척을 하고 박스에 담을 때는 무엇을 조심할지 모두 있다. 내 할 일은 이게 맞는 말인가 확인. 그리고 확인용 도장을 찍어 제작팀에 넘기는 것이다.
솔직히 볼 것도 없다. 틀린 곳이 없으니까. 이전에는 설계팀이 가장 고된 곳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정시 출근에 타부서에서는 월급도둑 취급을 받는다.
머신러닝이었나 그를 응용한 다음 세대의 신기술이랬나 그게 도입하고 이렇게 됐다. 엔지니어는 혹시모를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확인용. 하지만 처음 도입 후 지금까지 발견된 오류가 없다.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신할 거라 들었다. 육체적으로 굳은 일을 처리하는 로봇의 이미지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와서 가장 빨리 대체될 직업은, 아무래도 나의 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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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정말 엉망이 됐다. 다시 읽고 고치는 과정도 거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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